
아침에 일어나 어디로 산책하러 갈지 고민했지만 차를 들고 정말 오랜만에 범어사에 나왔다. 아주 이전에 김정산성의 4대문 환종주를 하면 가서 정말 오랜만에 오는 것 같았다.
8시에 범어사 입장 범어사 입장료 무료 주차통행료는 3,000원이다.
이 7층 석탑은 성보박물관 앞에 지어진 석탑이다.
초시먼
천왕문
불
보젤
풍경이 균일하지 않고 정사각형이었다.
보젤 앞의 계단을 지나 바닥의 통로를 지나갔을 때 그 앞의 높은 곳에 대웅전이 보였다.
대웅전 신라분무대왕 때(678년) 의상대사가 창건한 절이지만… 비록 많은 난과 많은 이유로 불타고 부서져 재건되는 것을 반복해, 이 흔적에 약 1,300년을 넘어 여기의 정체가 되었다고 하는 것 자체가 대단한 것 같다.
삼층석탑 여기에 올라보니 부산으로 이사했을 때 처음 왔을 때 주말마다 부산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여기에 온 기억, 삼층석탑과 여기 건물을 둘러본 기억이 나온다.
그때도 이 ㄱ자로 구부러진 소나무를 보고 이상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미륵전
비로전
관음전
가장 높은 곳에 서 있던 대웅전
대웅전 밑뜰에서 이렇게 주말에 어떤 법회가 열릴지 텐트와 의자를 운반하는 것이 계셨다.
지장 전
팔상전, 독성전, 나한전 안, 아치모형의 입구가 이색이었다.
위의 신령각 가서 내렸을 때 승려가 뭔가를 가지고 대웅전, 지장전, 나한정에 갔다.
그리고 독경음이 이어졌다.
김정산 고당봉을 향해 계곡의 길을 조금 걷기로 한다
이 길에 오르면 북문 고당봉까지 올라갈 수 있다.
조금 있지만, 계곡에 많은 돌을 건너는 다리가 있고 가타 쿠리 숲이있는 곳
이 장소는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의 소리를 듣기에 좋은 장소였습니다.
등산 카시와가 여기에 앉아 멜론을 깎아 드세요? 아니면 아래의 김정구 시민인데 운동으로 여기까지만 운동 겸, 산책 겸 올라 온 것인가? 이쪽의 계곡의 바위에서, 간이 앉아 있는 무언가를 드셔, 쉬면서 이야기도 하고, 그렇게 잠시 다리를 바위 위로 내려서 앉아 있었다.
오늘은 범어사 근처 금강암과 대성암까지 가기로 했다.
여기를 오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 나도 금강암을 걸어보니 질주하고 싶었다. 이대로 고당봉까지 가고 싶었다. 참았다. "조만간 김정산 4대문 환종주 다시 한번 한다"며 마음 속에서 다독했다.
덕분에 잠시 등산 같은 등산을 하지 않았다.
금강암 김정산에서 내려와 이곳을 지나간 적은 있는데 오늘 가보았다.
전방에 등산해, 고당봉에 오르는 분이라고 생각했지만… 금강암에 갔다.
금강암. 이곳의 특징은 보통 한문으로 되어 있는 현판이 모두 한글이라는 점이다.
대문자 비전
한글로 써두면 무슨 말을 하는지 알기 쉬웠다.
대자 비전은 이렇게 용이 많았다.
지붕의 기와도 용을 담고 있었다.
건물 왼쪽이 건물
오른쪽 삼성각의 모습
삼성각에서 본 대자 비전의 기와는 이렇게 용이 있었다.
나한정의 모습 안쪽의 부처님 등 불상과 조형물이 현대에 지어졌는지 주형미가 아름다웠다.
나한정의 스님 나무 테이블
나한정에서 본 대문자 비전 용이 지붕 위에서 열중하고 있었다.
내려가는 길로 돌아온 금강암. 보살님이 들어가면서 머리를 내리면서 합창하고 계셨습니다.
내려보니 나무 한쪽에 아주 작은 승려 인형을 누군가가 나무에 올린 것처럼 보였다.
또 김정산 계곡 등산하는 단체대학생들에게 잠시 길을 비춰 보니 여기서 다시 한번 자연스럽게 쉬게 됐다.
물 소리!
금강암의 크기에 깜짝 놀라며 아래에 있는 대성암도 가보고 싶었다.
내 마음은 곧 부처님이다. 모든 것이 마음을 달렸다.
이 장소는 스님들이 정신하는 곳인 것 같았다.
다시 범어사 경내로 돌아왔다.
내려올 때는 빠른 시간이 지났는지 범어사에 사람들이 많아졌다. 경상도에 와서 느꼈는데, 교회처럼 절에도 신자들이 정말 많다. 절은 종교적 공간이 아니라 문화재라는 인식이 나에게 강했다. 교회는 말 그대로 생활 속의 종교 공간이었다. 그런데 경주, 부산 등에 살아보니 이곳 절은 교회처럼 삶에서 종교장소라고 생각할 정도로 교회만큼이나 사람이 많다는 것... 그래서 절은 매우 옛날에도 이런 곳이었구나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내가 본 어린 시절의 사원은 산에 있었다. 당시 차량과 교통은 지금만큼 좋지 않았다. 교회는 우리 생활지 주위에 있고 사원은 산 속에 있기 때문에 신자들은 쉽게 접근할 수 없고 사람이 적고 조용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도심도 산인근까지 퍼져, 차도 많고 대중교통기관도 발달하고 있기 때문에 접근성이 좋아진 것 같다.
내릴 때 대웅전 중에는 사람이 많아 교회 예배처럼 그런 생사가 진행 중인 것 같았다.
다만 왔을 때는 텐트를 늘리고 있었지만, 돌아올 때는 이런 텐트도 전부 늘려 의자까지 앉아 어떤 이벤트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대웅전 앞 계단으로 내려 돌아가면서 점점 대웅전을 되돌아 보았다.
킹콩 스테이지
내려보니 이런 게 보였다.
범어사 소장 “삼국님” 유네스코 등록 확정 현 범어사 성보박물관 전시중 성보박물관에 들려주고 싶었다.
범어사 소장국보인 삼국사
점점 내리면서 대웅전을 되돌아 보았다.
오른쪽 종각의 모습
한 주문 후 왼쪽의 성보박물관에 갔다.
유네스코 등재 확정한 삼국님을 보고 싶었다. 그런데 여기 성보박물관의 문이 닫혀 있었다. 나중에 범어사를 벗고 차로 집으로 돌아가자 도로를 내려 오른쪽에 새로운 건물에 성보박물관이 보였다. 새로 건물을 지어 다른 공간에서 전시가 열렸다.
그렇게 범어사를 빠져나와 돌아왔다.
도로를 타고 내려서 길 오른쪽에 범해 성보박물관이 현대식으로 개관된 장소를 볼 수 있었다. 삼국님을 한번 보려고 했다. 입장료와 주차료 무료
여기의 특징은 들어갈 때 아토신 또는 슬리퍼를 신고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해변에 있던 아이들의 슬리퍼가 귀여웠다.
1층에 있던 1900년대 초반에 제작된 범어사 탬파 무지 크고 색이 매우 요론이었다.
1층과 2층에 전시실이 있지만, 삼국님은 2층에 있었다. 그리고 전시실은 사진 촬영 금지였다. (사진 촬영에 관한 사정이 있다.) 1층은 확실히 사진 촬영 금지라는 표시가 눈에 띄는 곳에 있었다.
나와 입구측을 다시 보았지만 사진 촬영 금지 표시가 없었다. 그래서 사진을 찍었다.
되돌아볼 때 다시 봐도 실내화로 갈아입어야 하는 규정과 어린이용으로 갖춘 실내화가 매우 귀엽다.
사원에 가서 많은 것을 내려와야합니다 ... 부산으로 처음 이사했을 때 찾아낸 범어사에 대한 추억을 다시 생생하게 부활시켜왔다. 그리고 내려야 하지만, 나는 범인이기 때문에 욕망을 더 담아 온 것 같다. 「김정산 고당봉에 오른다」 "김정상 4대문 환종주를 해줄게" ... .... 이런 욕망만 담아온 아침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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